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다. 맥주의 풍미가 충분히 드러나지만 과하지 않다. 브랜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명품을 세련되게 차려입은 여성 같다. ‘청담동 며느리’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이 수제맥주를 만들고 판매하는 업체는 ‘아트몬스터’. 지난해 경기도 군포에 1983㎡(약 600평) 규모 맥주제조공장을 세운 데 이어 서울 익선동과 문래동, 성수동에 매장을 오픈했다.

아트몬스터 대표 박재우(61)씨는 ‘강남역 7번 출구의 전설’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지금은 11번 출구로 바뀐 강남역 씨티극장 주변에서 그는 업장 24개를 운영했다. ‘팔로알토’ ‘파빌리온’ ‘봉순이 언니’ ‘통통배와 오징어 낙지’ 등 매장 8곳이 소위 ‘대박’을 냈고, 16곳은 3년 안에 투자금을 뽑았다. 실패한 매장은 4곳에 불과하다. 그는 "강남역 11번 출구 일대 상권은 내가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벌어들인 돈으로 그는 빌딩 5개를 사들였고, 강남역 땅값이 10배 오르며 부동산으로 큰 수익을 얻었다.

그런 박 대표가 다음 승부처로 정한 업종이 수제맥주다. ‘음식점은 아무나 따라 하기 쉽지만, 수제맥주는 투자비가 많이 들어 진입장벽이 높다’고 판단했다. "수제맥주를 만들려면 공장에 투자해야 하는데 개인이 하기엔 비용이 너무 크고 대기업이 들어오기엔 시장이 작습니다.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아이템에 내가 그동안 외식업에서 쌓은 경험을 더해 차별화할 수 있는 시장이죠."

그는 5년에 걸쳐 치밀하게 수제맥주 사업을 준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던 아들 박진호(35) 부사장에게 전문적인 맥주 공부를 권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수제맥주에서 가능성을 본 박 부사장은 망설임 없이 브루어(양조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 양조교육기관 시벨 인스티튜트(Siebel Institute)에서 공부한 뒤 독일 3대 맥주양조 교육기관이라는 되멘스(Doemens)에서 브루마이스터 과정을 밟았다. 시벨에서 만나 친구가 된 제이슨 쿠소우스키(Kusowski) 아트몬스터 부장과 500회 이상 시험 양조를 하면서 80개 맥주 레시피를 확보했고, 미국·일본·싱가포르·홍콩 등에서 열린 국제 맥주대회에서 양조장 설립 전부터 크고 작은 상을 수상했다.

"맥주 맛은 30%가 기계장비의 기능, 70%가 만드는 사람의 기술력"이라는 박 대표는 지난해 5월 맥주공장 건물을 신축하고 6월부터 장비를 세팅했다. 미국에서부터 독일, 캐나다, 체코, 중국까지 다니며 브루어리를 견학한 다음 340년 전통을 지닌 독일 맥주설비업체 카스파 슐츠 설비를 도입했다. 과감하게 100억 원을 투자했다. 

국내 대부분 수제맥주공장에서 사용하는 중국제보다 5배 이상 비싼 독일제 설비를 들여온 이유는 "일관성"이라고 박 대표는 답했다. "중국제 설비로도 괜찮은 맥주를 생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요. 맥주 품질이 들쭉날쭉하단 겁니다. 독일제는 비싸지만 높은 품질의 맥주를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지요."

청담동 며느리, 몽크푸드, 이태원 프리덤, 첫사랑향기, 사랑범벅 등 아트몬스터가 생산·판매하는 맥주 10여 가지는 맥주 맛과 향의 특징을 감각적이고 위트 있게 표현한 이름과 디자인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 이름은 모두 박 대표가 직접 붙이고 특허까지 받아놨다. 그는 "감각을 유지하고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매달 잡지 30권을 읽는다"고 했다. "주로 여성지로요. 트렌드는 여성이 주도하거든요. 여자들이 앞서 가면 남자들이 따라옵니다."

맥주 맛도 여성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무겁고 묵직하고 개성이 강해서 일부 마니아만 선호하는 맥주보다는 홉과 몰트가 조화를 이뤄 균형감이 좋고 마시기 편한 맥주가 여성뿐 아니라 라거에 길들여진 대부분의 한국인이 선호한다는 것. 

맥주 마니아가 아닌 일반적인 손님이 한 잔 더 마시는 맥주를 기준으로 삼는다. 가격은 한 잔(340~415ml) 5500~6500원으로 수입맥주나 다른 국내 수제맥주보다 저렴한 편인데, 자체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이다. 안주로 내는 피자와 치킨도 아트몬스터 맥주와 가장 어울리는 맛을 찾으려고 치킨집 200곳, 피자집 100곳을 방문했다.

아트몬스터는 ‘맥주 맛이 예술이네’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 국내 최초 시서론(Cicerone·미국 공인 인증 맥주 전문가)이자 ‘비어셰프’ 오너셰프인 손봉균씨가 "한국 수제맥주는 아트몬스터 전과 후로 나눈다"고 했을 정도로 전문가들에게 인정 받고 있다. 국내 수제맥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괴물’의 등장이다.